마음을 다스리는 글

욕심을 비우면 마음보다 너른 것이 없고, 탐욕을 채우면 마음보다 좁은 곳이 없다.
염려를 놓으면 마음보다 편한 곳이 없고, 걱정을 붙들면 마음보다 불편한 곳이 없다.
-공지사항: 육아일기 등 가족이야기는 비공개 블로그로 이사했습니다.

2018년 5월 27일 일요일

생강가루 만들기 - 2018. 5. 27(일)

생강이나 울금이 면역력 증강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다큐를 보고 생강 가루를 만들어 양념으로 쓰기로 마음 먹었다. 그 마음을 먹은지 수 개월이 되었지만 결국 만들었다.

1. 대전중앙시장에서 생강을 3근 샀다.
2. 생강을 씻는다. (이 부분이 제일 힘들다. 물에 넣고 흙을 긁어내야 한다.)
3. 생각을 잘라서 말린다. (건조기가 없으면 정말 오래 걸린다.)
4. 분쇄기로 말린 생강을 간다. (분쇄기가 비싸다. 그러나 금방이다.)
(다음에는 생강이 나오는 가을에 생강을 사야겠다. 그런데 그때 사면 잘 마르려나.)



2018년 5월 13일 일요일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조심스러운 전망 - 2018. 5. 13(일)

다음 달의 북미회담에서 북한이 정말 핵폐기로 방향을 잡을까?

북한이 미국이 이란에게 요구한 수준의 핵폐기 수준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싱가폴에서 북한의 김정은을 만나는 사상 초유의 행사를 벌이는데 사전에 북미간 상당한 조율이 없을리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북한이 그리 쉽게 핵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북한의 김정은이라면 중국의 노선을 따르지 않을까. 중국은 양탄일성이라 불리는 핵개발 프로젝트를 성공한 후 공산주의를 공고히하고 경제개발에 성공했다. 이것이 중국이 러시아 등 다른 공산권 국가와는 상당히 다른 점이다. 러시아, 동구권 국가들은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경제개발을 시도했지만, 중국만한 경제발전을 이룩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공산주의를 고수하며 독특한 경제체제로 승승장구를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북한이 핵 개발을 막 마친 시점에서 중국을 모델로 따르지 쉽게 핵을 포기할 것 같지 않다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의 트럼프는 지금 미국내 정치적, 경제적 공약들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면서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트럼프는 북한 문제로 만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때문에, 트럼프는 신중하게 북핵문제를 접근하기 보다는 다소 경솔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도 같다. 특히, 최근의 이란 핵협상 파기는 특히 경솔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다음달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으로 부터 진정한 핵폐기를 이끌어 내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사실 한국인으로서 우리나라에 평화가 깃들길 바란다. 그런데 정부, 언론, 사회전체가 너무 낙관만 하고 있어서 더 걱정이다.

2018년 4월 13일 금요일

오랜 친구를 만나다 - 2018. 4. 13(금)

불가리아의 빅토리아가 우리나라에 왔다. 빅토리아는 2011년 6월에 러시아에 갔을 때 만나서 러시아의 환경을 이야기하며 최악의 여행경험을 서로 이야기하며 재미있게 보냈었다.

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빅토리아는 일로 우리 회사에 출장을 왔다. 복도에서 빅토리아를 보았을 때, 낯이 익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목요일에 어쩌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게 되었는데, 이름표에 쓰여진 빅토리아란 이름과 불가리아라는 나라 이름을 보고서야 러시아에서 만난 빅토리아란 것을 기억해냈다.

나는 목요일 퇴근하고 간단한 기념품(한글이 쓰여진 잔)과 불가리스 요구르트를 사서 금요일 아침에 빅토리아에게 주었다. 빅토리아는 다음주까지 우리 회사에 일정이 있어서 머물지만 나는 다음주내내 출장이 있었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에 맥주 한잔을 하기로 했다.

빅토리아가 머무는 호텔 근처에 마침 수제맥주집이 있어서 치맥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정말 많이 했다.

인연이란...



2018년 4월 10일 화요일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따라 대전에서 부산까지 - 2018. 4. 7(토) ~ 4. 10(화)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따라 대전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갔다.

나는 2014년 가을 대전에서 서울까지 산악자전거로 여행하고는 장거리용으로 자전거가 좀 더 가벼웠으면 좋겠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도로용 자전거를 샀다. 다음 자전거 여행 목표지로 부산을 염두해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2015년 둘째가 태어났고 장거리 자전거 여행은 엄두도 못내다가 2018년 드디어 아내의 허락을 얻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나는 이번 여정으로 2014년 대전에서 서울까지 자전거 여행을 포함해서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완성했으며, 436km 정도를 여행해 최장거리 자전거 여행기록도 100km 가량 갱신했다. 
  • 총 거리: 481km
  • 소요기간: 4월 7일(토) ~ 4월 10일(화) (3박 4일)
  • 평균속도: 12.1km/h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따라 대전에서 부산까지

회사일로 힘들고 회사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있던 나는 생각도 정리하고 기분 전환도 할 겸, 오래전부터 계획하던 부산 자전거 여행을 이번에 감행하기로 했다. 봄꽃이 만발할 4월 두번째주 주말을 출발일로 정했다. 그리고, 도로용 자전거로 장거리 여행을 위해 핸들바도 사서 장착하고 준비를 차근히 했다.  그런데, 4월 첫째주 대전에 벚꽃이 만발하고 비도 와서 꽃잎이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볼때마다 좀더 빨리 출발했어야 하나라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래 대전에서 부산까지 440km 가량을 잘하면 이틀, 길어야 사흘만에 완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지난번 서울 여행에서 하루 170km를 여행했는데, 나는 도로용 자전거의 성능을 더하면 하루 200km 정도는 여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산이었다.

내가 계획한 여행경로는 먼저 대전에서 오천 자전거길을 따라 연풍까지, 연풍에서 새재 자전거길을 따라 문경, 문경에서 낙동강자전거길을 따라 부산까지 가는 것이었다.
  • 대전->세종: 1번 국도
  • 세종->연풍: 오천 자전거길 (오천: 미호천, 보강천, 성황천, 달천, 쌍천)
  • 연풍->문경: 새재 자전거길
  • 문경->부산: 낙동강 자전거길
첫째날(4.7): 대전->상주 경천대 (191km)

출발일로 정한 4월 7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든든히 챙겨먹고 날이 밝아오는 6시 집을 나섰다. 봄 바람이 많이 불고 쌀쌀했지만 힘차게 출발했다. 2014년 서울 자전거 여행때 세종시에서 길을 잃어 합강공원에서 오천자전거길로 들어서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준비를 단단히 했다. 서쪽에서 바람이 많이 불어 세종시와 오천 자전거길에 막들어섰을 때는 맞바람을 맞으며 힘겨웠으나 자전거길이 서서히 동쪽으로 방향이 잡혀가자 순풍이 되어 방해가 되지 않았다. 길을 갈 때마다 세번째 가는 오천 자전거길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모래재(97km 지점, 4. 7. 11:05)

지난번 왔을 때, 풍경에 감탄했던 괴강교는 벚꽃이 만발해 화려한 분홍 옷으로 단장하고 있었다. 이문재 시인은 농담이란 시에서 아름다운 것을 마주했을 때 생각나는 이가 있다면 사랑을 하고 있다고 노래했다. 나는 괴강교를 올 때마다 꼭 한번 가족과 함께 와야지 하는 생각을 하지만 아직까지 실현을 못했다. 이번까지 나는 세번째 괴강교를 오지만, 아직 가족과 함께 와보지는 못했다. 내년 봄 벚꽃이 필 때는 꼭 가족과 함께 괴강교에 와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더 해본다.

농담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했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는 더 멀리 보내기 위해서
종은 더 아파야 한다

괴강교(105km 지점, 4. 7. 11:51)

오천 자전거길을 따라 자전거를 탈 때면 나는 꼭 할매 청국장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2014년도 오천 자전거길을 여행할 때 보다 약 1시간 반가량 일찍 할매 청국장집에 도착했다. 나는 이번 여행을 예상했던 사흘이 아니라 이틀에도 끝낼 수 있으리라는 약간의 희망을 가졌다.

할매 청국장집(116km 지점, 4.7. 13:02)

할매 청국장집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서려니 나른 했다. 누워서 낮잠을 한숨 자고 싶었으나, 문경 새재 자전거길의 가파른 산을 넘어야 한다는 두려움으로 졸음을 쫒아내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리고,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중심인 행촌교차로에 오후 두시경 도착했다. (2014년 여행때보다 한시간 가량을 단축했다.)

행촌교차로에서 부터의 여정길은 내가 이제까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2014년도에는 행촌교차로에서 새재 자전거길을 따라 북쪽으로 길을 갔었고, 이번에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남쪽으로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행촌교차로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남쪽으로 길을 잡아 떠났다. 나는 나의 이전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을 시작한다는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행촌교차로(128km 지점, 4.7. 13:53)

행촌교차로에서 멀지 않아 새재 자전거길에서 가장 가파르다는 이화령 고개길이 시작되었다. 5km 남짓되는 이화령 고개길은 130km 가량을 달려온 나에게는 자전거를 타고 오르기엔 벅찼다. 자전거를 내려 오르막을 오르는데 몇몇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오르막을 올라가기도 했다.

이화령 고개 휴게소 인증센터(133km 지점, 4. 7. 15:04)

힘겹게 오른 이화령 고개 휴게소에서 좀 쉬었다. 거기서 쉬면서 자전거 속도계를 충전시켜 놓고 있었는데, 문경 쪽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속도계를 두고 온 것을 깨닿고 도로 고개길을 걸어 올라갔다. 백두대간 이화령 비석 앞의 사진은 다시 올라갈 때 찍은 사진이다. 뜻하지 않게 국토종주 자전거길에서 가장 높다는 해발 548m의 이화령을 두번이나 넘었던 것이다.

백두대간 이화령 비석(133km 지점, 4. 7. 15:18)

괴산군에서 이화령 넘어서는 바로 문경시였다. 문경시는 벚꽃이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문경의 자전거길을 따라 나있는 소야 벚꽃길에는 시민들이 나들이를 나와 있었다. 원래 문경시에서 자전거 여행 첫날 여정을 풀 계획이었으나, 아직은 해가 많이 남았기에 상주까지 가보기로 했다.

문경 소야벚꽃길(148km 지점, 4.7. 16:03)

문경과 상주는 경북의 준엄한 산세와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그 사이의 벌판이 절경을 이루는 곳이었다. 상주의 퇴강리에서 만난 낙동강이 시작되는 표지석에서 낙동강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알 수 가 있었다. 상주의 옛 이름은 상락이었는데 그 동쪽 벌판을 흐르는 강이라는 뜻에서 낙동강이라 불린다고 한다.

낙동강 칠백리 표지석(181km 지점, 4.7. 18:06)

상주의 경천대는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경천대에서 벌판을 따라 내가 자전거를 타고온 길을 바라보고 그 옆을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하지만, 감동에 젖어 있기에는 날이 빠르게 저물고 있어 마음이 급했다. 잘 곳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문경인지 상주인지 어디선가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화물차를 모시던 분이 자기가 운영하는 자전거 민박집 명함을 주셨지만, 거기까지는 무리로 보였다.


경천대에서(191km 지점, 4.7. 18:42)

경천대를 지나 바로 아래 있는 마을의 경천대모텔에서 첫날 여정을 풀기로 했다. 나는 첫날 아침 06시부터 17시까지 13시간 동안 191km를 자전거로 주파했다. 200km 정도는 갈 수 있지 않을까 했으나, 그것은 도로용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무리한 목표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내일은 할머지 집에서 기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내가 있는 경천대에서 함안 할머니 댁까지 거리를 보니 160km정도 되었다. 오늘 내가 190km정도를 왔으니 내일 저녁은 할머니 댁까지 자전거로 가서 기제사를 지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했다. 나는 더운 물도 나오지 않는 모텔 방에서 샤워를 하고 주인이 하는 식당에서 라면과 식은 밥을 저녁으로 먹고 잠을 잤다.

둘째날(4.8): 상주 경천대->대구 달성군 칸 호텔 (134km)

다음날 아침 일찍 차가운 물로 다시 샤워할 마음이 들지 않아서 옷만 입고 길을 나섰다. 날씨는 어제보다 더 쌀쌀했고 바람도 불어 추웠다. 길을 한 2km 정도 잘못 들어 오던 길을 되돌아가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찾았다. 옷을 한겹 더 입고 길을 나섰다. 역시 둘째날은 예상대로 자전거 안장에 앉은 엉덩이가 타는 듯 아팠다. 다리는 뻐근했지만 엉덩이에 비하면 견딜만 했다. 하지만, 다리 역시 오르막을 박차고 오를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오르막이 나오면 다리도 엉덩이도 모두 힘들었기에 그냥 내려서 걸었다.

상주보(194km 지점, 4.8. 6:32)

아침을 먹어야 했다. 배가 고파서는 먼 길을 가지 못하기에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낙동강을 따라 나있는 자전거 길은 상업시설이 하나도 없는 촌락들만 간간히 볼 수 있어서 끼니를 해결하기가 어려웠다. 길을 가다 만난 어느 동네 허름한 시골가게(상주시 중동면 신암리 삼거리 매점)가 문을 열었기에 간식거리를 넉넉히 샀다. 간식거리를 사면서 할머니께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여쭈었더니 조금 가다보면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이 말에 희망을 걸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란 곳이 알고보니 어제 명함을 받은 그 민박집(상주시 낙동면 물량리, 낙단보 (들꽃) 자전거 민박)이었다. 그 민박집 식당에서 어제 명함을 주신 그 분께 육계장을 아침으로 사먹었다. 아침을 먹으며 민박집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장님도 직접 자전거로 부산까지 세번정도 다녀오신 적이 있다고 하셨다. 4월 말쯤 날씨가 따뜻해지면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질 것을 대비해 어제는 이화령까지 자전거길에 붙여놓은 민박집 광고들을 점검하러 다녀오시는 길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저녁에 묵을 숙소(합천군 창덕면 양진리, 적교장)도 소개해 주셨다. 그러면서, 여기에서 합천까지는 평지로 길이 좋지만, 합천에서 부산까지는 넘어야하는 산이 두 개정도 있다고도 알려주셨다.

둘째날은 합천의 적교장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낙동강 길을 따라 자전거를 달렸다. 둘째날은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자전거에 설치한 핸들바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핸들바를 잡고 자전거에서 엎드리면 체중이 엉덩이에서 분산되어 엉덩이 통증이 덜 했으며, 해가 뜨면서 거세지는 바람의 영향을 줄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자전거 위에서 자세를 바꿔가며 자전거를 탔다. 둘째날에는 주로 낙동강의 여러 보들을 구경했다. 보에 도착하면 쉬었고, 다음 보를 목표로 삼고 길을 갔다.

낙단보(211km 지점, 4.8. 08:24)

해가 떠오르자 점점 바람이 세졌다. 길은 평지였으나 마주 불어오는 바람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상주에서 구미, 대구 등 대도시로 감에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피곤함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구미보(231km 지점, 4.8. 09:59)

칠곡보(262km 지점, 4. 8. 12:12)


둘째날 점심은 강정고령보 근처에서 먹었다. 아침을 육계장에 밥을 두 공기나 먹었거니와, 둘째날의 통증을 달래느라 자주 쉬면서 초코바와 영양갱을 먹어서 점심시간을 좀 지나서 점심을 먹었다. 강정고령보의 바로 옆에는 동네가 있었으며 거기에 식당이 여럿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강정고령보 근처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뿐 아니라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강정고령보 옆 언덕을 내려가 칼국수 집(대구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우홍산네칼국수)에서 점심을 먹었다.

강정고령보(289km 지점, 4.8. 15:03)

점심을 먹으며 좀 쉬었던 터라 길이 좀 수월할 거라 생각했지만 더 세어진 바람때문에 앞으로 나가기 더 힘이 들었다. 바람이 자전거의 핸들바 사이를 통과하면서 휘파람 소리가 났다. 자전거가 울도록 바람이 세었던 것이다. 가까스로 달성보에 도착해서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조금 쉬었다. 달성보에는 합천창녕보까지 낙동강 자전거길이 아니라 구지면을 가로지르는 우회로를 안내해 놓고 있었다. 30km가 넘는 자전거길이 아닌 지름길을 알게 되어 약간 힘이 났다. 안내문에는 지도 뿐 아니라 주요 교차로의 사진까지 안내되어 있었다. 나는 그 지름길로 들어서기 위한 주요 지명과 교차로 사진을 기억하기 위해 여러번 되뇌었다.

달성보(310km 지점, 4.8. 16:06)

달성군 유채꽃밭(310km 지점, 4.8. 16:42)

그런데 정작 지름길로 들어서야 하는 갈림길에 도착하자 공사가 한창이었다. 달성보에서의 안내되어 있던 도로 표지판을 찾을 수 없었다. 안내문에서 본 표지판의 사진과 다른 표지판을 만나자 여러 번 되뇌며 기억했던 지명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안내문을 사진으로 찍어 놓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지름길을 가기 위해서는 자모리 방면이 아닌 구지 방면으로 갔어야 했는데, 가물가물한 기억을 바탕으로 우회도로가 아닌 종주길인 자모리 방면으로 길을 잡았다. 내가 기억을 더듬으며 갈림길을 선택하느라 우물쭈물 하는 동안 자전거를 탄 한 사람이 자모리 쪽으로 가는 것을 보며 나도 그 뒤를 따랐다. 그 길을 따라 진등산 입구(다람재)까지 가서야 갈림길을 잘못 선택한 것을 깨달았다. 오후 다섯시가 넘어 길어진 산 그림자를 보며 그 그림자 속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길을 되돌아 나와 구지 방면으로 내려갔다.

대구 달성군 자전거 우회도로의 갈림길(공사전 모습)

구지면을 지나 달성2차 산업단지를 지나는데 이미 오후 여섯가 훌쩍 넘어있었다. 산업단지를 지나며 주위를 둘러보니 묶을 숙소가 몇군데 보였다. 합천창녕보까지는 10km정도 오늘의 목표로 정한 적교장 모텔까지는 20km가 남았는데 해는 곧 저물 것 같았다. 그래서 달성2차 산업단지내 숙소에서 쉬고 내일 다시 길을 가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그리고, 근처 영빈궁반점에서 해물짬뽕을 저녁으로 먹었다. 그리고, 칸호텔이란 곳에서 쉬었다. 뜨거운 물을 받은 욕조에 들어가 있으니 아픈 엉덩이며 다리가 한결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셋째날(4.9): 대구 달성군 칸 호텔->본포교 (77km)

부산 자전거 여행 셋째날이 밝았다. 여느 때처럼 어슴푸레 동녘이 밝아오는 새벽 여섯시쯤 길을 나섰다. 이번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면서 삼일만에 완주를 목표로 했었고, 도로용 자전거의 성능을 기대하며 이틀만에 완주도 슬쩍 넘보았다. 하지만, 여행의 삼일째 아침 나는 여전히 낙동강이 바다와 만나는 목표지점까지 140km를 남겨두고 있었다. 삼일째 완주도 빠듯한 것이다. 이틀동안 나를 잘 따라준 자전거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삼일째 여정을 시작했다.

셋째날 여정을 시작하면서 창녕군 송곡리 무심사를 만났다.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산자락에 위치한 이 절은 정말 풍경이 수려했다. 그 수려한 풍경때문에 이 절은 여러 방송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고 했다. 아직 절은 이른 아침에 깨어나지 않았지만 이번 자전거 여행을 하며 처음 만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려 잠시 자전거를 세웠다.

무심사(341km 지점, 4.9. 06:31)

무심사를 뒤로하고 산길을 오르며 어제 적교장까지 가기로 한 계획을 수정해 달성군에서 쉬기로 한 것은 정말 잘 한 결정이었음을 느꼈다. 어제 여섯시가 넘은 시간에 적교장까지 20여 킬로를 한시간이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높은 언덕길과 깊은 산세를 보며 해가 진 어제 밤 이 길을 지나지 않은 것은 잘 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심사 산길을 오르며 산에 무언가를 채취하러 온 노부부 두분을 만났다. 두 분은 나에게 혼자냐고 물었다. 근처 동네에 사시는 분 같았으며 무리를 지어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하는 사람들을 꽤나 봐온 듯 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왜 혼자냐고 되물으셨다. 혼자 무섭지 않냐고도 물으셨다. 내가 무서워해야할 것이 있냐고 되묻자 여기 늑대가 있다고 하셨다. 웃으며 말씀하신 걸로 봐서 나를 놀리시는 듯 했다. 아침에 만난 유쾌한 노부부에게 작별을 인사하고 길을 계속 갔다.

무심사 산길을 내려오자 금방 합천창녕보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합천창녕보에서 박진고개까지는 길이 정말 좋았다. 강을 따라 나 있는 둑길을 따라 자전거를 달렸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바람이 일지 않아 유쾌하게 길을 갈 수 있었다.

합천창녕보(325km 지점, 4.9. 07:03)

합천창녕보에서 함안창녕보까지 50km가 넘는 길을 가다가 어제 목표로 정한 적교장 모텔을 아침 여덟시쯤 도착했다. 적교장 모텔 뒤에 있는 서울식당에서 찌게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창녕의 낙동강을 따라 시원하게 뚫려있는 길을 달리다 박진고개를 만났다. 높은 잔등산(252m) 속으로 나 있는 길을  올려다보며 가파른 고개를 어찌 넘나하는 걱정을 했다. 국토를 자전거로 종주한 많은 사람들이 박진고개를 넘으며 힘 들었던지 길 옆 시멘트 벽에 스스로를 격려하는 문구를 많이 새겼다. 그 글들을 보며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다. 어제 기제사를 지낸 할머니께 전화를 드리며 고개를 올랐다.

박진고개 오르막길 끝은 아래서 올려다 보며 걱정한 만큼 높지 않았다. 박진고개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가 자전거를 타고 온 길이 강과 함께 까마득하게 이어져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고난도 막상 겪어보면 걱정했던 만큼 힘든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박진고개를 오른 힘겨움을 박진고개가 되돌아보게 한 내가 굴러온 길과 물 한모금으로 떨쳐내고 신나게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박진고개(370km 지점, 4.9. 09:24)

박진고개에서 내려다본 낙동강(370km 지점, 4.9. 09:24)

박진고개를 넘어오자 박진전쟁기념관으로 가는 표지판이 있었다. 박진전쟁이라는 전쟁이 있었나 궁금함이 생겼다. 나는 처음에 박진전쟁은 박진이라는 장군이 지휘한 전쟁이라 생각했다. 이 여행기를 쓰면서 박진전쟁이란 한국전쟁때 부산으로 가는 길목을 두고 국군과 미군이 북한군과 벌인 전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제 아침을 먹은 낙단보 (들꽃) 민박집 아저씨가 부산까지 가파른 언덕 두개만 넘으면 길이 좋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어제 무심사 산을 하나 넘었고 오늘 박진고개를 넘었으니 이제 가파른 언덕은 다 넘었고 좋은 길만 남았다는 생각에 힘이 났다.

하지만, 낙동강 남지 개비리길이 남아 있었다. 양아지 마을에서 시작해 신전리의 도초산을 따라 나있는 임도는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긴 산길이었다. 산을 넘어 다시 낙동강과 만나기 위해 길을 가면서 학계리 방아간에서 일요일에도 일을 하시는 아저씨에게 물을 얻어 먹었다.

다시 낙동강을 만나니 그 곳은 남지유채꽃밭이었다. 끝도 보이지 않게 노란 유채꽃밭이 펼쳐져 있고 그 꽃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아이들 수십명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 풍경을 보며 나는 천국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남지유채꽃밭 가운데는 울긋불긋 튤립이 한창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들에게 물으니 중학교 일학년이라고 했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가니 아이들이 하나둘씩 인사를 건냈다.

남지유채밭(390km 지점, 4.9. 10:43)

천국같은 풍경을 한 남지유채밭을 지나 철교를 건너니 능가사가 있었다. 두번째 만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길을 떠난지 얼마지내자 않아 어느덧 낙동강 하구 까지  100km도 남지 않았다.

능가사(390km 지점, 4.9. 10:56)

능가사에서 본 남지교(390km 지점, 4.9. 10:56)

낙동강 하구까지 98km 남은 지점(4.9. 11:09)

창녕함안보에 도착해 부모님께 전화하니 차를 타고 나를 만나러 오시겠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이 흘러가는 내 고향 창원까지 와서 부모님 댁에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창원 본포교에서 부모님과 만나기로 했다. 본포교에서 차를 타고 나를 마중나온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둘째 강민이 까지 만나 자전거를 아버지 차에 싣고 셋째날 여정을 마쳤다.

창녕함안보(396km 지점, 4. 9. 11:41)

부모님을 만나 어릴 때 종종 들른 창원 북면의 마금산 온천 근처에서 두부와 비빔국수를 점심으로 먹고 부모님 댁으로 가서 쉬었다. 저녁으로 마산 어시장에 나가 회도 떠서 부모님과 거하게 먹었다.

네째날(4.10): 본포교->낙동강하구 (70km)


밀양 삼랑진(435km 지점, 4. 10. 08:49)

낙동강 하구까지 21km 남은 지점(4.10. 10:44)

낙동강 하구까지 1km 남은 지점(4.10. 12:28)

낙동강 하구둑(481km 지점, 4.10. 12:34)

대전으로 돌아가는 KTX 기차안

2018년 3월 28일 수요일

마산에서 가져온 해원이 책상 - 2018. 3. 28(수)

해원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책상이 필요해졌다. 해원이 입학 선물로 근사한 책상을 마련해 싶었다. 근사한 책상이란 비싼 새 책상이 아니라 의미있는 책상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내가 학창시절에 쓰던 책상을 가져다 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책상은 내가 국민학생때 부터인지 중학교때 부터인지 언제부터 쓰던 것인지 생각도 잘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되었다. 아이를 셋이나 두고도 공부를 계속하시던 아버지가 책상을 사주시던 날 책상은 이렇게 보는 책이 아래로 들어갈 수 있도록 책꽃이가 들려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것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역시 책을 많이 보시는 아빠는 책상을 고르는 기준도 남다르시다는 생각을 어린나이에도 했었다.

나의 그 책상을 해원이가 쓰게 해주고 싶었다.

이 생각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새 책상을 해원이에게 사주어야 한다고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내도, 여동생도 가족 모두가 반대했다. 나는 끈질긴 가족을 더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책상을 우리 집으로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옮기면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책상 유리가 살짝 떨어져나가긴 했지만, 다시 봐도 반가운 내 책상이 우리집으로 무사히 왔다.

반갑다 책상아. 우리 해원이도 잘 부탁한다.


2018년 3월 27일 화요일

상인의 유래 - 2018. 3. 28(수)

상인이란 말은 원래 상나라 사람이라는 뜻이다. 상나라는 중국 고대 왕국, 하은주 중 은나라를 일컫는다. 은 나라의 원래 이름은 상이었는데, 은허로 도읍을 옮기고 나라의 이름을 은으로 고쳤다. 은나라가 주나라에 의하여 망하고 나서 은나라 사람들은 전국 각지를 떠돌며 장사를 했는데, 이를 두고 상인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회계의 기본개념 - 2018. 3. 28(수)


재무재표
재무제표란 재무에 대한 제반 표를 말하는 것으로 재무상태표, 포괄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 자본변동표로 이루어진다.

재무상태표는 대차대조표의 다른 이름으로 일정 시점에서 기업의 재무상태를 나태나는 재무보고서이다. 재무상태표는 2010년까지 대차대조표로 불렸는데, 좌변에 자금의 운용 결과로 얻은 자산을 표시하고 우변에는 그 자산을 얻기 위하여 조달한 자금의 원친인 부채와 자본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손익계산서는 일정기간 동안 기업의 경영성과를 표시한다. 손익계산서에는 수익과 비용, 당기순손익이 보고된다.

현금흐름표는 현금 잔액이 남기까지의 기업의 영업활동, 투자활동, 재무활동을 표시한다.

자본변동표는 주주의 몫인 자본의 크기와 변동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회계 기본
모든 경제활동은 자산, 자본, 부채, 수익, 비용의 다섯가지 요소로 이야기할 수 있다.

기업의 자산은 자기 자본과 다른 사람에게서 빌려온 부채로 구성된다.

A (Asset, 자산) = L (Liability, 부채) + C (Capital, 자본)

여기에 기업 활동의 결과인 수익과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이 기업 활동의 결과는 기업의 자본을 증가(순수익 발생, 수익 > 비용)시키거나 감소(순손실 발생, 수익 < 비용)시킨다.

 A = L + C + R (Revenue, 수익) - E (Expense, 비용)

A + E = L + C + R

이 식이 회계의 기본구조이다.


Lee, Jeong Ho

Lee, Jeong Ho
Biography: Bachelor: Computer Science in Korea Univ. Master: Computer Science in KAIST Carrier: 1. Junior Researcher at Korea Telecom (2006 ~ 2010) 2. Researcher at Korea Institute of Nuclear Nonproliferation and Control (2010~)